외로움(고독)과 독존(獨存)
저는 젊어서 친구들의 부탁을 거의 거절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내능력이 닿는다면 돈이든 시간이든 다 내어주려고 애썼습니다.
아마도 착한 사람, 좋은 사람이란 말을 어지간히도 듣고 싶었나 봅니다.
하지만 살아오면서 꿔주고 받지못한 돈이나 먼저 베푼 정성이 돌아오지 않는걸
체험하면서 사람들한테서 적지않은 실망과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알게
된건 호의는 처음엔 고맙지만 나중엔 당연한 권리가 되어간다는 배움이었지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언행은 돌아보지 않고 제가 변한 것을 탓했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만나서 나눈다는 교류의 형태가 잡담과 술정도였습니다.
남에 대한 부러운 시샘이나 비판, 험담만 하는 그시간이 점점 아까와졌습니다.
나이가 점점 들어가며 그러다보니 자연히 사람들속에서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그러다가 마음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마침내 독존(獨存)을 체험했습니다.
정말 온우주세상에 나조차 넘어선 이것하나밖에 없더군요. 아무것도 없는데
이상하게도 세상 모든게 다 있었고 살아온 삶이 그대로 생명과 순수의식의
경이롭게 눈부신 창조이자 동시에 체험활동이었습니다.
무한한 전체로서 홀로 독존하면서도 동시에 수많은 개체현상으로 살아가는 삶,
이 장엄한 파노라마속에서 대체 무엇을 나라고 해야할지 처음엔 헷갈렸지요.
하지만 과거 개체로서 살며 느꼈던 외로움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참 신기한 일입니다. 똑같이 홀로 있는 체험은 마찬가지인데 외로움은 뭔가
허전함을 계속느끼고, 독존은 오히려 충만함과 일체가 신선한 새로움으로
다시 생생하게 다가온다는 사실말입니다. 그러면서 과거의 외로움은 생각이
“난 혼자다”라는 관념과 감정속에 머무르며 생겨난 착각임을 알았습니다.
누구나 분명히 깨어나면 세상전체는 나누어질수 없는 하나의 실체지만 그의
생명력과 창조력이 무한함속에서 엄청난 다양성으로 자기를 표현하고 있음을
보게됩니다. 즉 하나의 전체성이 무수한 개체들로 자기를 경험하고 있지요.
이자리를 보고 하나되지 못하면 그일시적인 개체현상을 자기로만 알고 자꾸
타개체들에 대해 시비분별을 하면서 점점더 외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우울증,
외로움, 가족사이에서 깊이 소통하지 못하는 절망은 우리에게 고통을 줍니다.
하지만 모든 정신적고통은 실은 뭔가 지금 잘못되었다는 내면의 신호입니다.
그것은 ‘고독에서 독존(獨存)으로 나아가라’는 영적인 부름이지요.
그러므로 공부인이라면 개체의 자기를 방어보호하려고 너무 애쓰지마세요.
그건 이 엄청난 우주의 신비를 누리는 기쁨에 비하면 아주 하잘것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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